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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of-date/board_HB

비오는 날

No : 203
Name : mimesis

1. 비

비에 관한 기억이야 사람마다 없을 수가 없겠지요. 우울한 사람들이 비가 오든 안 오든 늘 우울한 건 사실이지만 비오는 날엔 더 우울할걸요. 그건 아마도 비가 가지는 독특한 리듬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적추적...둔탁하고 청승맞잖아요.

저도 비에 관한 몇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떠오르는 군요. 그는 한 시절 동안 저의 연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봄에 만나서 한참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에 시작한 사이라 좋았던 시절의 대부분을 비가 함께 했군요.
제가 골라준 핫팬츠를 입고 고시학원으로 우산을 가지고 데리러 오던 기억이라든가(훗, 그 반바지는 그야말로 "핫"한 길이인데 그걸입고 학원까지 찾아왔길래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집에서 입으라고 사준거였는데 말이지요.), 제가 탄 신촌가는 버스 창앞에서 우산쓰고 손을 흔들던 그 사람의 기억, 음 또 밥먹고 나오던 때 예고없이 쏟아지던 소낙비의 추억, 연일 계속되는 비에 진탕이 되버린 그 사람의 집 앞에서 비에 잠긴 발이 불어터지도록 서있던 기억.....생각하면 끝이 없군요.후덥지근한 여름에 청명하던 비는 곧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하기야 지금 생각하면 다 좋은 것도 한 때일 뿐이지만 말이죠. 저러한 기억들때문에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 비가 오는 날이면 자폐아 마냥 변했던 기억이 납니다. 뭐 지금이야 자신있게 "나는 비에 인디펜던트하다"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지만요.

비오는 날이 우울하다 하는 사람들에겐 한가지 처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간단한 거죠. 우산으로 기분내기.
남자들도 많은 학교의 비오는 날 풍경이 어떤한 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출신교의 비오는 날은 학교 밖하곤 사뭇 틀려서요. 우산 색들 때문에..^^
저도 예전에는 우산에 무신경했었죠. 때타도 티안나는 게 최상이고 그거 말곤 다 그게 그거 아닌가 싶어서..집에서 제일 늦게 외출하는 지라 비오는 날이면 제일 구질구질한 우산이 제차지가 되어 버리곤 했습니다. 칙칙한 체크우산 아니면 때탄 원색우산이요.
근데 요즘엔 좀 틀리죠. 우산에 꽤나 집착하는 편입니다. 지금 저는 다른 식구들과 공유하지 않는 제 우산을 세개 가지고 있습니다. 분홍체크 우산, 하얀 우산, 개구리 눈달린 초록색 우산...비오는 날의 하늘이야 어쩔 수 없이 우산을 통해 봐야만 하는 것이어서, 저런 색들을 통해 보는 날은 비록 비가 오는 날일지라도 밝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저런 우산에 때타지 않게 유지하려면 온 신경을 우산에 집중해야 하기때문에 외출동안 지리할 여유도 없죠. 어쨋든 우천시엔 우산이 제 애인입니다. 오늘은 의상컨셉(--->이렇게 적으니 우습네요.: 제가 좋아하는 흰 세일러 칼라가 달린 하늘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었었습니다, 세일러문 티셔츠..여름한 철 거의 제 유니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에 맞게 흰우산을 들고 나갔는데, 비도 안오고, 워낙 칠칠한지라 우산 주머니만 잃어버리고 왔습니다. ㅜ.ㅜ
뭐 한심한 작자의 취향이니 다른 우울한 사람들에겐 이렇다할 처방이 될 수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eyepopping

2. 성격
일요일엔 1년도 넘게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군대가고 난 뒤에 제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이제 연락이 끊기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는데, 기특하게도 제 이멜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밥을 먹고 있는데 이런 말을 합니다.

"너, 요새도 혼자 잘노냐?.."
-"어...."
"아직도 남자친구 없지?"
-"어....귀찮어서."
"시집안가냐?"
-"갈데 없어"
"하긴 그 성격에.....넌 혼자 살 거 같어..."

어흑...내 성격..내 성격...어때서...
가끔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꼬이는 걸 보면 전혀 문제 없는 성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꽤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나, 애정을 받는 문제에 있어선 꽤 버거움을 느낍니다. 어느정도까지 친근함을 표현해야 하는 것인지 참 모호한 부분인지라....... 친한 척 하다가도 이상징후가 느껴지면 겁먹고 매몰차게 구는 데 그때마다 영 찝찝합디다. 이렇게 마무리지을 수 밖에 없는 건지..
하긴 맘에 차는 사람 만나게 되면 달라지겠지요. 전에도 그랬으니까요.누군가을 좋아한다는 것이 예전처럼 쉬운일이 아니라는 게 좀 걸리지만요.
그래도 혼자사는 것은 싫어서 오늘도 학교친구에게 같이 살자고 꼬셔봤는데, 이젠 자기는 남자친구 생겼다고 싫답니다. ㅜ.ㅜ
저런 말 들으면 제 짝은 어디 있는 건지 점이라고 보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훗


-나가면서 한 마디 더.
재홍이가 머리를 짧게 자르니 더 귀엽네요. 그런데 잘 모르고 보면 초보아버지 육아일기같겠습니다. 전번에도 말했지만 정말 둘이 닮았어요. 솔직히 털어놓으셔도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