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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 & Money

지인이 보내준 글 - 돈의 심리학

돈의 심리학(경기침체에 대한 에세이)
 
최명기(정신과전문의/부여다사랑병원장/경희대학교경영대학원 겸임교수/Class of 2003)


최근에 금융위기로 인해서 실물경제가 위축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 과연 돈이란 무엇인가, 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부에는 절대적인 가치와 상대적인 가치가 있다고들 한다. 절대적 가치만 놓고 보면 우리들은 조선시대의 명문 사대부 보다 더 부유하다. 여름에는 더 시원하게 겨울에는 더 따뜻하게 지낸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 입을 수 있는 옷의 종류도 많다. 텔레비전, 핸드폰, 냉장고와 같은 기기들 덕분에 그 당시에는 누릴 수 없는 혜택을 누린다. 아마도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당수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 보다도 더 큰 부를 누리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인 부의 상승은 잉여가치의 확대에서 나온다. 한 시대, 한 국가, 한 사회에서 평균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도 잉여소득이 남는다면 그 잉여소득은 부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부는 여전히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상대적인 부에 대해서는 그 빈곤감이 더 심해졌다가 더 약해졌다가가 반복이 된다. 상대적인 부를 유지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권력,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부가 세습되는 정도가 어느 정도 심하느냐에 따라서 상대적인 부를 유지하는 권력의 체계가 생기게 된다. 급격히 패러다임이 변동하면 부가 차별적으로 배분되더라도 그 해당자가 바뀌게 되면서 상대적인 빈곤감은 약해진다. 일제치하, 6.25 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 조선시대에 부를 독식했던 양반 지주 집단의 대부분은 몰락하고, 새로운 부유층에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1990년대 말 IT 벤처 붐이 생겼을 때도 벤처 사업가란 이름의 새로운 부자들이 나타났다. 기존의 부자들이 몰락하고, 새로운 부자들이 등장하는 시대에는 보통사람들도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상대적 부에 대한 불만이 감소한다. 지난 몇 년간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가치 상승기에도 사람들은 정부를 대신해서 자본시장이 부의 분배를 이루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아파트와 펀드에 투자했다. 그러한 기대가 무너지는 현재 많은 이들의 마음은 춥디 추운 상태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상당수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소비하지도 못할 부를 쌓아놓고 산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부는 시간이다. 누구도 하루에 24시간 이상을 살 지 못한다. 앞으로 어디까지 평균수명이 증가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평균수명이 증가해도 당분간은 100세 전후가 되면 마음대로 활동하는데 제한을 받는다. 그런 점에 있어서 자신이 평생 쓰지도 못할 부를 이미 획득한 이들이 혹시 부를 더 늘리기 위해서, 혹시 부가 줄어들지도 모를 미래를 대비해서 현재의 소중한 시간을 돈 걱정에 쓰는 것은 모순이다. 과거에 보장자산이라는 말이 한 때 유행했었다. 은퇴하고 사망할 때까지 적절한 소비를 위해서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것을 계산하면서 고액납부 종신보험 가입을 권유했었다. 하지만 선진국의 예를 봤을 때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지금부터 점점 더 좋아지면 좋아졌지 악화되기는 힘들 것이다. 소위 보장자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고액의 보험금을 납부하고,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잉여소득이 있는 중산층은 그냥 성실히 생활하고 저축만 해도 노후에 어느 정도 삶은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돈은 항상 우리를 초조하게 만든다.

과거에 조선시대 때는 신분에 따라서 지을 수 있는 집의 칸수가 정해져 있었다. 그 사람의 벼슬과 신분에 따라서 입을 수 있는 관복의 레벨도 정해져 있었다. 이 시대의 신분은 얼마나 돈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정해지는 수가 많다.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로 서열을 매기고자 하는 사회분위기는 부동산회사나 투자은행이 선호하는 분위기다. 돈 있는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고, 골프를 치고, 명품을 쓰고, 외제차를 몰면서, 강남에 산다는 일종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돈이 있는 이들은 획일적으로 그러한 기호에 부합하고자 한다. 부의 서열이 그러한 형태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러한 물질의 형상에 사로잡히다가 보면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

돈이 없이는 살 수 없다. 물물교환의 척도로 등장한 돈은 인류가 만든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돈이 줄어들면 우리는 위축된다. 하지만 준비 안된 가운데 돈이 너무 갑자기 늘어나서 기존의 내 인격이 그 돈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인간은 타락하게 된다. 갑자기 돈을 너무 많이 벌게 되면 역설적으로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를 잃게 된다. 스스로 돈을 벌 수 없으면 독립할 수 없다. 하지만 재벌가의 아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재벌가의 아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길은 역설적으로 돈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얼마나 돈을 많이 받느냐는 직장에서 그 사람의 능력과 위상을 반영한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나보다 더 많이 버는 이가 존재한다. 돈만으로는 살 수 없는 품위, 인격, 취미, 애정과 같은 자신만의 가치가 없으면 진정한 자기존중감은 생기지 않는다.
 
현재의 경제위기로 인해서 실질적으로 의식주의 고통을 받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모두 힘을 합쳐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돌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능력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경제위기는 돈이 아닌 다른 가치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자성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까 언급했듯이 로또 1등이 되어서 천문학적인 상금을 받을 때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돈으로 인해서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잃을 수도 있다. 만약에 로또에 당첨되어서 돈에 압도당하지 않았다면 그는 보다 보람차게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다. 지난 몇 년간 주가가 오르고, 펀드 수익률이 깨소금같고, 아파트 값이 자고 나면 올랐다. 지난 몇 년간 우리의 시간의 상당부분은 돈에 신경을 쓰느라고 소비되었다. 경기침체는 역설적으로 남에게 보이지 않는 내재적인 인격측면과 비금전적 가치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준다.

따뜻한 봄이 되면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고, 여름이 되면 더위에 지치고 정신 없이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이것 저것 생각하며 감성이 풍요로워진다. 그러다가 겨울이 되고 연말이 되면 우리는 지난 1년을 돌이켜보고 마음의 결산을 한다. 지난 몇 년은 어쩌면 여름에 해당되는 돈만 쫓는 정신 없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이제 소중한 가을이 왔다. 그리고 조금은 긴 겨울도 지나야 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춥고 힘들기만 한 겨울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좀더 탄탄하게 마음을 다지고 돈 이외의 다양한 탐구하고 시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